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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적인 죄에 대한)새로운 이해!
(습관적인 죄에 대한)새로운 이해!
상세정보
- 자료유형
- 단행본(국내)
- 언어부호
- 본문언어 - kor
- 청구기호
- 저자명
- 서명/저자
- (습관적인 죄에 대한)새로운 이해! / 변승우 지음
- 발행사항
- 형태사항
- 123 p ; 23 cm
- 키워드
- 전자적 위치 및 접속
- 원문정보보기
- 책소개
-
저는 구원론에 대해 많은 설교를 합니다. 요즘 설교자들은 그렇지 않지만 이것은 신앙의 선배들의 특징입니다. 과거 하나님의 사람들의 설교집을 읽어 보면 구원론에 대한 설교가 굉장히 많습니다. 이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원보다 중요한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들은 것을 우리가 더욱 간절히 삼갈지니 혹 흘러 떠내려갈까 염려하노라. 천사들로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치 아니함이 공변된 보응을 받았거든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히 2:1-3)
히브리서 기자는 구원을 “큰 구원”이라고 했습니다. 구원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천국과 지옥이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고대 작가는 영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한 마리의 새가 천 년에 한 번씩 이 지구로 날아와서 모래 한 알을 물어가야 하는 운명에 처했다고 가정하자. 그 가련한 새는 한 알의 모래알을 물고 멀고 먼 길을 날아갔다가 천 년이 지나면 다시 날아와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과연 이 새가 다시 날아올 것인가 의심할 것이다. 그러나 천 년이 지나서 이 새는 헐떡이면서 또 한 알의 모래를 물어가려고 다시 올 것이다. 이리하여 이 지구의 무한한 모래알 중에서 또 한 알이 줄어들게 된다. 이렇게 일을 계속하는 동안 무한한 세월이 흘러 어느 날 이 작은 새는 마지막 한 알의 모래알을 물고 가 자신이 맡은 과업을 다 끝내게 된다. 그러나 영원이란 바로 그 순간에도 계속되는 것이다.”
이 숨 막히는 글을 소개하면서 찰스 피니는 한술 더 떠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구에서의 자신의 과업을 다 마친 후에, 이 새는 계속해서 다른 혹성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 … 등으로 옮겨가서 또 다시 천 년마다 모래 한 알을 물어다가 옮기고, 그 일이 끝나면 그 다음에는 다른 별로 옮겨가며 작업을 계속하다가 마침내 수억만 개의 거대한 천체들이 모두 없어지게 된다고 가정해 보라. 이 모든 천체가 사라져 버리는 그 순간에도 ‘영원’이라는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다. … 영원에는 끝이 없다.”
그러니 지옥의 영원한 불구덩이에서 건짐받는 것이 얼마나 큰 것입니까? 상상도 할 수 없이 큰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천국에 들어가는 것도 큰 것입니다. 비록 부끄러운 구원일지라도 결코 작은 것이 아닙니다. 큰 구원입니다. 이에 대해 찰스 피니는 이렇게 썼습니다. “성경에는 구원으로 얻게 되는 기쁨은 말로 형언할 수 없으며 영광스러운 것이라고 말한다. … 우리가 최초에 얻게 되는 기쁨이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 기쁨은 영원토록 지속될 것이며 끊임없이 성장해 나가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누리게 되는 기쁨은 진정 무한하다.
당신이 지금부터 일만 년을 살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가정해 보자. 그리고 당신에게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서 당신 자신이 하나님 보좌 앞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가정해 보라. 만일 당신이 그 보좌 앞에 있는 사람이 당신 자신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면 아마 당신은 엎드려 그에게 경배했을 것이다.”
이런 일이 가능한 이유는 이 땅에서 믿음이 성장할 뿐 아니라 천국에서도 영원히 성장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영은 바울의 고백처럼 이 땅에서도 날로 새롭습니다. 그런데 하늘에서는 성장이 멈추겠습니까? 아닙니다. 하늘에서도 날로 우리의 영혼이 새롭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성장에 비례하여 신령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능력도 계속 증가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결국 우리는 무한한 복과 낙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구원이 얼마나 큰 것입니까? 구원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큽니다. 그래서 우리 주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마 16:26)
그런데 놀랍게도, 이처럼 엄청난 구원에 대하여 오늘날 너무나도 많은 목사님들과 신자들이 너무나 피상적인 견해를 갖고 있습니다. 이것은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 일입니다. ‘미혹’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그러면 천국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이 들어가게 될까요? 즉 한 사람이 참된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 아닌지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사람이 그 정확한 기준을 아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심판자이신 하나님만이 온전히 그것을 아십니다. 그런데 최근에 저는 그 기준에 대하여 완전하지는 않지만 보다 더 근접한 이해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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